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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부법

영어 원어민적 사고와 세계관(World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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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면서)

 

우리가 영어를 공부하려면 (영어) 원어민적으로 사고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가능할 것 같지 않아 보입니다. 대신에 영어 원어민적 관점으로 영어 공부를 해야 한다 라는 말에는 동의합니다. 말장난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영어 원어민적 사고를 가지려면 원어민처럼 생각하고 사고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뇌구조가 원어민의 뇌로 바뀌어야 합니다. 따라서 이 방향의 노력은 영어 원어민적 뇌를 만드는 과정에 초점을 둡니다.

 

반면에 영어 원어민적 관점으로 영어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한국어와 영어의 관점이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 지에 주목하게 됩니다. 특히 어떻게 다른 지를 연구하고 그 차이를 극복하는 과정이나 방법에 우리 노력의 초점을 맞출 수가 있습니다.

 

다르지 않나요?

 

저는 영어 원어민적 관점으로 영어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국인과 영어 원어민이 언어를 보는 관점이 어떻게 다른 지를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차이점을 극복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습니다. 가능성이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생각했습니다. 영어식 사고를 한다는 게 애당초 불가능하다는 것은 확실하게 알아야 영어 공부를 하는 많은 사람들이 쓸데없는 곳에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영어 공부와는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니 가벼운 마음으로 상식을 하나 건진다 라는 생각으로 읽으시기를 권합니다.

 

 

1.    사람의 생각의 틀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한번 굳어진 사람의 생각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다음 그림은 우리의 뇌 구조를 상상해서 그려 본 것입니다.

 

 

 

세계관(World View)이란 각 개인이 갖고 생각의 틀을 말합니다.

 

사람들 각자의 세계관은 한번 굳어지면 잘 변하지 않고, 특히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고착됩니다. 어릴 때는 남의 말도 잘 듣고 귀도 기울이는 팔랑 귀를 갖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이가 많아질수록 지기 생각이 많아지고 고집이 세집니다.

 

사람의 뇌도 용량과 성능이 있기 때문에 나이가 들면 성능이 떨어지고, 새로운 정보가 들어갈 용량도 줄어듭니다. 그래서 새로운 생각의 틀 즉, 새로운 세계관이 만들어지기가 어려워집니다. 생각이 바뀌기 힘들게 되는 것입니다.

 

위의 그림에서 눈을 들거나 내리면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지만, 1mm의 방향도 바꿀 수 없습니다. 세계관을 바꾸기 위해서는 아주, 아주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외부적인 큰 충격이 가해지면 바뀔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어 어느 날 갑자기 아프리카의 어느 외진 곳으로 이민을 가서 살아야 하는 환경이 된다면, 그곳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새로운 세계관이 형성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상적인 상황에서 일상적인 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영어 원어민의 사고를 가질 수는 없습니다. 이미 한국에서 수십년을 살아 이미 한국인의 세계관을 가진 이들이 어느 날 갑자기 영어 원어민의 사고를 갖는 것은 가능할 리가 없습니다.

 

이걸 확실히 알기 위해 세계관이 무엇인가하는 것을 좀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인간의 행동과 생각의 구조

 

앞서 잠깐 말한대로, 인간의 행동은 그가 갖고 있는 생각의 틀에 의해 결정됩니다. 사람들의 생각은 그가 갖고 있는 지식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 갖고 있는 지식에서 가치 체계가 형성되고 그 결과가 그 사람의 가치관, 도덕관 등의 생각의 틀이 됩니다.

 

사람들의 지식은 통상 경험에서 만들어집니다. 경험이란 그가 직접 겪은 직접 경험이나 책 등에서 얻은 간접 경험을 포함합니다. TV 등의 언론 매체로부터 얻은 정보, 교육받은 것 등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각 개인의 경험은 그가 속한 사회나 나라의 문화, 종교, 관습 등에 영향을 받으면서 축적됩니다. 그렇게 쌓인 경험의 총량을 고상한 말로 바꾸면 세계관World View)이라는 용어가 됩니다.  (<그림 1> 참조)

 

 

 

<그림 1> 세계관의 구조

 

따라서 인간의 행동과 세상을 보는 관점은 자신도 모르게 형성된 세계관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3.    언어와 문화

 

문화는 언어 공동체입니다. 문화에는 언어 공동체의 개성이 함유되고 전승됩니다. 문화는 삶의 모든 양식에 함유됩니다. , 인사, 말 거는 방식, 거절과 칭찬 방식, 식사 방식, 호의를 나타내는 표현, 아이를 키우는 일, 명절을 지내는 방식 등이 문화의 한 옆면입니다.

 

언어는 사람들의 생각을 표현하고, 사고를 정교하게 만듭니다. 언어는 인간의 사고를 재현합니다. 오스트리아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겟슈타인(Ludwig J. J. Wittgenstein,)내 언어의 한계가 곧 내 세계의 한계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문화는 세대를 거쳐 전승됩니다. 사람들은 태어나면서 어떤 문화에 소속됩니다. 문화는 개인의 내면에 잠재되어 학습되고, 공동체에 전승되며 내면화, 규칙화 됩니다. 공동체 문화는 오랜 전통, 구성원의 암묵적 동의 아래 유지되며, 따라서 변화가 어렵습니다.

 

언어는 대상의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개인의 경험, 사유방식, 표현 방식 등 내면의 다양한 사고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언어가 사고의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은 언어 학수에서 언어와 문화로 드러나는 사람들의 사고를 함께 학습해야 하는 필요성을 제기됩니다.

 

문화는 개인들의 세계관을 형성사는 밑바탕 중의 하나입니다.

 

 

4.    세계관(World View)이란?

 

세계관이란 세상을 바라보는 눈, 즉 세상을 보는 관점(perspective)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이 세상이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있다고 보는가에 관한 문제가 세계관의 문제입니다.

 

월터스라는 학자를 이를 좀더 구체화하면서 한 사람이 사물들에 의해 갖고 있는 기본적 신념의 포괄적인 틀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 세계관이란 지각의 틀이며 사물을 인지하는 방식, 삶에 대한 시각인 동시에 삶을 위한 시각입니다. 다른 말로 세계관이란 실재(實在, 실제로 존재하는 것)와 관련한 그 사람의 전제(前提)들과 확신들의 총합으로 이는 삶에 관한 그 사람의 전체적인 관점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모두 세계관을 가집니다. 이 세계에 관한 그 나름의 관점, 그 나름의 이해가 각자의 세계관입니다. 따라서 어느 시점의 세계관의 수는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수만큼 존재합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세계관이란 생각 밖의 일입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면서 세계관한 질문이나 탐구라는 게 없습니다. 또한 그것에 삶에 어떤 문제가 되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사람 각자에게는 세계관이 존재합니다. 이런 의식되지 않은 세계관을 일상적 세계관 또는 생활 속의 세계관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영어공부와 세계관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5.    영어 원어민적 사고, 영어 뇌 만들기는 가능할까?

 

영어 원어민적 사고를 가져라! 영어 뇌를 만들어야 한다!

 

글의 처음에서 미리 말을 했듯이 이 말은 참 많이 듣던 말입니다. 정말 많은 영어 강사분들이 (영어) 원어민적 사고를 강조합니다. 영어를 잘 하려면 원어민적 사고를 가져야 한다고 ...

 

어떤 영어교재는 몇 개월만 하면 미국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의 원어민적 사고를 갖게 해 주겠다고 광고를 합니다. 어떤 영어 강사분들은 왜 원어민적 사고를 하지 않느냐고 야단을 치기도 합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원어민적으로 사고를 하라고 했지 않아요? 왜 안하세요. 그러니까 영어가 안 늘지요.”

 

원어민적 사고를 만들어 주겠다는 교재를 공부해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이게 가능하기는 할 것일까요? 많은 영어강사들이 원어민적 사고를 강조하고, 때로는 강요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이 원어민적 사고다 라고 가르쳐 주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기껏 영어와 한국어의 문법 차이를 설명하고는 이게 원어민적 사고다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원어민적 사고를 갖는 게 가능할까요? 결론적으로 불가능합니다.

 

1990년대 회사의 배려로 미국의 한 경영대학원에서 4개월 정도의 특별 코스를 공부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대학원에서 우리를 위해 특별히 마련한 커리큘럼으로 한 학기를 공부하는 것입니다. 커리큘럼은 달랐지만 다른 모든 것은 일반 학생들과 똑 같이 생활했습니다. 기숙사도 배정받고 다른 나라 학생들과 방도 함께 배정받아 생활했습니다.

 

그때 그 대학원을 다니고 있던 한국계 학생들과 교류도 했습니다. 가끔 만나 식사도 하고, 그러면서 미국 생활에 대한 조언도 듣곤 했습니다. 이들과 나눈 대화 중에 지금도 기억나는 대화가 오늘의 주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가 너희들이 영어를 잘하니까 부럽다 라고 말하니까, 한 친구가 자기는 대학 때 미국에 와서 아직 영어를 잘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 친구는 제 기준에서는 굉장히 영어를 잘 하는 친구였습니다. 그 친구가 다른 친구를 가리키면서, 재는 초등학교때 와서 영어를 참 잘한다고 말했습니다. 가리킴을 당한 친구는 또 말했습니다. 자기도 영어를 잘 못한다고

 

그런데 초등학교 때 왔다는 그 친구 말이 재미 있었습니다. 자기 친구 중에서는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이 있는데, 그 애도 영어를 잘 못한다고 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가 한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농담 반, 진담 반, 다만 영어가 참 어렵구나 하는 정도로만 들었던 이야기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집의 문화는 상당부분 한국의 문화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6.    영어 원어민적 사고? 결론적으로 불가능하다.

 

결론적으로 말해 한국에서 태어나 성년으로 자란 사람들은 영어 원어민 적인 사고가 불가능합니다. 왜 그런지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7.    북한 주민, 하나님 어머니, 태극기 부대

 

혹시, 태극기를 들고 광화문에 모여 시위하는 태극기 부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이해가 되십니까? 삼일절에 성조기나 이스라엘기를 들고 데모하는 나이 지긋한 목사들이 이해가 되십니까? 교주의 아내를 하나님 어머니라고 부르면서 신으로 숭배하는 기독교 이단 교회 신도들이 이해가 가십니까? 망해도 벌써 망했어야 할 북한이 아직까지 저렇게 건재한 게 이해가 되십니까?

 

저는 이해가 갑니다. 그것은 지독한 세뇌의 결과입니다. 최근에는 가스라이팅이란 용어를 쓰기도 합니다.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쯤 어머니에게 질문한 것이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것이 있습니다. 학교 숙제로 그림을 그리다가 불쑥 어머니께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해방 전에 북한 괴뢰들과 남한 사람들이 어떻게 같이 살았어요?”

 

당시 어린 어이의 머리 속에 있는 북한 사람들은 이리 모습에 인민군 군복을 입고 있던 악마들이었습니다. 반면에 남한 사람들은 흰 옷을 입은 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아이가 살던 시절에는 남과 북이 나뉘어 살고 있으니까 평소에 볼일이 없었지만, 해방 전에는 남과 북 구분이 없었다고 하니까 인민군복의 이리 모습을 한 악마들과 흰 옷의 선한 사람들이 섞여 살고 있었을 텐데 그게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그 모습이 도저히 머리 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난감한 표정을 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선합니다.

 

그 때부터 우리 세대는 50년간 반공 가스라이팅을 받으면 살았습니다. 우리 세대는 빨갱이!” 하면 때려 죽여야 돼하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파블로프의 개로 키워졌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내내 반공 교육을 받으며 살았고 고등학교 때는 교련이라는 군사 훈련까지 받으며 반공에 세뇌를 당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 우리가 접했던 언론은 대부분 이미 극우화 된 것들이었습니다. 지금의 60대 이상의 세대는 살면서 한 순간도 반공 가스라이팅에서 자유로울 수 없던 세대입니다. 특히 70대는 어린 시절 6.25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태극기를 들고 나갑니다. 그들에게 그것은 나라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파블로프의 개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행동은 파블로프의 개가 종소리를 들으면 침을 흘리는 것과 같은 원리의 행동에 불과합니다.

 

스님도 빨갱이는 때려 죽여도 된다고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곳이 대한민국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의 60, 70대 세대를 이념의 뇌가 거세를 당한 세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뇌 구조를 바꿀 수 없다면 방법은 없은 것일까요? 좀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8.    기독교 세계관

 

지금 대한민국에서 세계관이란 말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곳이 있다면 개신교 교단의 일부 교회들과 신학자들입니다. 특히 진보적인 개신교 교단이 여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많은 한국인들의 세계관은 유교, 불교, 샤머니즘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특히 샤머니즘에 많은 영향을 받고 살고 있습니다. 많은 한국 교회 기독교인들은 교회에 다니고는 있지만 세계관은 여전히 다른 한국인들과 다름없습니다.

 

일부 진보적인 개신교 목회자들은 신도들의 이런 세계관을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바꾸지 않고는 진정한 기독교인으로 거듭나게 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기독교 세계관을 전파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많은 교회에서 기독교 세계관이란 교육 과정을 개설해 신도들을 교육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세계관 운동을 하고 주도하는 신학자들이나 교육자들도 교인들의 세계관을 기독교 세계관으로 바꾸는 것이 매우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고안해 낸 개념이 있습니다. 바로 세계관 안경이라는 개념입니다.  

 

, 사람이 갖고 있는 본래의 세계관을 쉽게 바꿀 수는 없지만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생각의 틀을 정립하여 이를 교육하고 훈련시켜 마치 안경처럼 쓰게 하는 것입니다.

 

9.    또 하나의 세계관 유니버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뜬금없이 세계관이란 용어가 게임 관련 업체에 나타났습니다 처음에는 일본에서 유래된 게임 등에서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저는 마블 영화를 통해 이 개념의 세계관이란 용어를 처음 접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세계관이란 앞서 살펴본 세계관과는 다릅니다.  앞서의 세계관은 독일 철학에서 처음 제기되어 발전된 개념으로 영어로는 World View라고 합니다. 그런데 게임이나 영화에서 말하는 세계관은 Universe라는 용어를 번역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Shared Universe라는 단어는 한국에서 세계관 공유라는 말로 쓰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세계관은 창작물 속의 세계를 말합니다.

 

Universe 세계관은 각종 창작물에서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가상의 세계, 또는 세계의 이모저모에 대한 여러 설정을 두루 일컫는 말로 쓰입니다. 게임에 용어를 처음 적용했던 일본은 Universe 번역한 것은 아니었지만, 개념은 Universe 세계관관 동일합니다.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할 때 해당 영화나 게임이 제시하는 유니버스 즉 세계관의 개념을 이해하고 그 속에 뛰어 들어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면 훨씬 더 몰입할 수 있게 됩니다.  

 

 

10.영어 원어민적 사고 – 유니버스나 기독교 세계관으로 생각해 보자

 

영화나 게임에서 제시하는 세계관(universe)을 이해하듯이 영어권 사용자들의 세계관 즉 원어민적 사고를 이해하고 몰입하면 영어의 세계에 훨씬 더 쉽게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기독교 세계관처럼 영어 원어민적 세계관이라는 안경을 만들이 영어를 할 때는 이 안경을 쓰고 하면 영어를 보다 쉽게 배울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사소한 것 같지만 아주 중요한 용어 사용 방식이 있습니다.

 

(영어) 원어민적 관점을 갖는다 라는 것입니다.

 

영어 원어민적 사고를 갖거나 하는 게 아니라 다만, 관점을 갖는/갖게 하는 것입니다. 그 관점으로 영어를 보라는 것입니다.

 

원어민적으로 사고해라, 원어민의 뇌를 가져라, “영어 원어민적 관점으로 영어를 보라라는 말은 그게 그것 같지만 분명이 틀립니다. 그리고 학습에 임하는 방식도 크게 달라집니다.

 

영어를 원어민적 관점에서 보려면 즉, 영어 원어민적 관점을 갖기 위해서는 영어 원어민의 세계관이 어떤 지를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그 틀이 제시되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한국어와 한국인의 세계관에 관한 연구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차이를 비교하고, 그 차이를 줄이려는 노력을 하도록 해야 제대로 된 영어 학습이 가능할 것입니다.

 

영화나 게임의 유니버스 적인 세계관은 상세히 얻을 수 있습니다. 제작자들이 이 세계관에 관한 설명서를 주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세계관도 여러 학자와 교회에서 오랫동안 연구하여 기독교 세계관의 틀을 제시해 놓고 있습니다.

 

영어 원어민의 세계관을 이해하려면 이와 같은 설명서가 있어야 할 텐데, 현재는 이런 게 없습니다.

 

 

 

11. 필요한 것은? (영어) 원어민적 세계관 교재

 

원어민적 사고를 가져라는 틀린 말입니다. , 틀리지 않았어도 거의 불가능합니다. “원민적으로 사고해라라는 말도 틀린 말입니다. 사고를 내 맘대로 쉽게 할 수가 없습니다. “원어민의 사고로 개조해 주겠다.”도 틀린 말입니다. 불가능합니다. 만약 가능하더라도 그 사람은 한국에서 살려면 다시 한국인의 사고로 개조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한 사람이 두 개의 세계관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고, 만약 가졌다면 다중인격 소유자입니다.

 

대신에, 영어를 공부할 때 영어의 원어민적 관점에서 공부해야 합니다. 영어와 한국어는 영국과 한국의 거리만큼 멉니다. 영어는 한국인에게는 가장 어려운 외국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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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영어 공부가 필수적인 세상입니다. 영어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고, 영어로 된 정보가 가장 많습니다. (저는 영어 회화가 영어 교육의 궁극적 목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영어 공부에 대한 투자는 국력과 비례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의 영어 실력만큼 국력도 커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효율적으로 영어를 가르치고 배워야 합니다. 그러려면 여러 사람들인 한 목소리로 주장하는 (영어)원어민적 관점으로 영어를 가르치고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원어민적 관점이란 게 도대체 무엇일까요?

 

, 우리가 한국인의 세계관 즉, 한국인의 사고 체계는 제대로 알고 있을까요?

 

우리가 관점을 바꾸거나 새로운 관점을 갖기 위해서는 나의 관점의 기초가 되는 세계관이 어떤 것인지를 먼저 알 필요가 있습니다. 영어 원어민적 관점을 갖는다는 것은 원어민적 사고를 갖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흉내내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려면, 한국인의 관점과 원어민의 관점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연구하고 그 차이를 인지하고 극복하는 방법론이 개발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합니다. 영어 학습 방법론의 배경이 되는 사고의 틀이 먼저 정립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한국인과 영어 원어민이 어떻게 다른 지, 문화, 언어 심리 등을 연구해 그 체계를 세워야 합니다 원어민의 사고 체계의 바탕이 되는 그들의 세계관, 문화, 언어 등이 우리의 것과 어떻게 다른 지 연구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차이를 알고 그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저는 이것이 한국 영어학계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교육부의 과제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것이 한국 영어 교육의 국가적인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어학자나 국어학자는 물론이고 문화나 사회 심리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이 모여 문화 연구부터 어학 연구에까지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하여 이것을 한 학기 정도의 교재를 개발해 고등학교에서 가르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또한, 공유가 가능한 교재로 개발하여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그 지식을 습득하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

 

한국의 문화 교육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학습과정에는 한국의 문화 과목이 있습니다. 영어 원어민 나라인 영국이나 미국에서 한국인을 위한 영어 배경 문화에 대한 교재를 개발해 주면 좋겠지만 그럴 리 만무합니다. 우리가 급하고 필요하니까 이런 교재는 우리가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영어 교육에 어마어마한 돈을 쓰는 나라에서 이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조차 없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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